다리를 다친 소년이 절룩거리며 갯벌을 걷는다. 묵묵히 전진하던 소년은 이윽고 초록색 깃발 앞에 도달한다. 칼을 꺼내 깃발을 잘라낸 그는 깃봉에 붉은색 깃발을 동여매고 깃봉조차 붉은색으로 칠해버린다. 극단적인 원경과 극단적인 근경을 번갈아 사용하는 이 작품은 뚜렷한 줄거리가 없는 대신 묵상적인 분위기를 환기한다. 지독한 바람소리만이 너울대다 갑작스레 밝은 톤의 음악이 흐를 때 스크린 위에 떠오른 것은 다름 아닌 금가고 깨진 백조배. 소년이 백조배의 머리를 바다쪽으로 돌리는 장면에서 어렴풋이 희망이 엿보인다. 극중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지만 쓰나미를 경험한 소년의 모습을 소재로 삼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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