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생애 가장 ‘위험했던’ 순간의 기록
그 이름만으로도 세계 젊은이들을 뜨겁게 달구는 혁명적 비틀즈 존 레논!그의 Post-Beatles 스토리를 담아낸 문제적 다큐멘터리 - <존 레논 컨피덴셜>
신선하고 독특한 음악으로 60년대 세계 대중음악을 장았댔던 전설적 그룹 비틀즈 그리고 그 전설적 명성을 뒤로하고 화려한 무대가 아닌 민중 시위 현장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존 레논! 비틀즈 이후, "Gove peace a chance!" 라는 슬로건 아래 음악과 반전 현화 시위 운동을 통해 미국으로 대변되는 기득권 세력의 권력횡포에 정면 승부했던 존 레논의 긴박하고 드라마틱했던 시간을 기록한 흥미진진한 다큐멘터리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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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레논을 기억하는 수 많은 사람들과의more
실제 인터뷰를 통해 얻어진 결과물 <존 레논 컨피덴셜>
“무엇이 정말 일어났는지를 이야기해 줄 믿을만한 사람을 과연 어떻게 골라내야 할까? 그 시대를 기억하더라도 직접 개입되어 있지 않았거나 책이나 다른 사람을 통해 사건에 대해 간접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일단 제외시켰다. 우린 정말 그 현장에 있던 사람들을 원했다. 닉슨 정부 관계자들로부터 극좌파에 이르기까지 사건에 관여했던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 데이비드 리프
존 레논과 그의 활동에 대해 이야기하는 수 많은 사람들. 데이비드 리프와 존 쉐인펠드 감독은 <존 레논 컨피덴셜>을 단지 역사적 사건만을 나열하는 식의 다큐멘터리 영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당시 존 레논과 함께 시대를 살았던 다양한 인사들의 생생한 증언을 택해 가장 현실적인 존 레논의 진실에 한 발짝 더 다가선 다큐멘터리 영화로 완성시켰다.
<존 레논 컨피덴셜>을 만들기 위해 2005년 4월 이미 존 싱클레어와 인터뷰를 마친 데이비드 리프와 존 쉐인펠드 감독은 2005년 7월 본격적으로 <존 레논 컨피덴셜> 제작 과정에 착수한다. 두 감독은 당시 FBI 요주의 대상이었던 안젤라 데이비스 교수, 블랙팬더당의 리더 바비 씰, 이피 멤버였던 스튜 앨버트, 뉴욕계 푸에르토리코인 단체 ‘영 로드’의 대변인이자 방송인인 제랄도 리비에라 등 존 레논을 알고 있거나 함께 사건을 겪었던 주변 인물들의 인터뷰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존 레논을 감시하는 임무를 맡았던 두 명의 전직 FBI요원들과 닉슨 대통령의 수뇌부였던 G. 고든 리디와 존 딘, 1972년 선거 당시 닉슨의 라이벌이었던 민주당 후보 조지 맥거번까지 두 감독은 존 레논을 감시하던 당시 정부 쪽 인사들의 인터뷰까지 화면에 담아낸다. 뿐만 아니라 인터뷰 후 ‘존 레논이나 그의 음악에 대해 전혀 모른다’라고 고백하기까지 한 전 뉴욕 주지사 마리오 쿠오모를 인터뷰, 존 레논이 미국에서 일련의 사건을 겪었을 당시 정부의 입장이나 정치적 상황까지 가장 객관적으로 존 레논과 당시 사건에 접근한다.
마지막으로 존 레논과 그가 말하고자 했던 진실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는 존 레논의 동반자 오노 요코에 이르기까지 데이비드 리프 감독과 존 쉐인펠드 감독은 모든 인터뷰를 직접 따내며 2006년 겨울까지 영화를 위한 다양한 인사들의 주요한 인터뷰를 확보했다.
존 레논이 전하려 했던 진심을 담아낸 영화
<존 레논 컨피덴셜>
“우리가 처음 이 이야기를 구상했을 때 우린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그 일들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왜 미국 정부는 존 레논을 제거하려 했을까? 그의 말이 왜 그리도 위험하다고 여겼던 걸까? 존 레논이 겪었던 사건들을 통해서 우린 무엇을 깨우칠 수 있을까? 이 영화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었던 이가 자신의 명성을 이용하여 평화를 알리려 했던 이야기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 데이비드 리프
“우리는 영화가 그 당시의 미국의 사회, 정치, 문화적인 측면까지 아울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존 레논이 선택했던 것들과 그러한 노선에 투신하게 되던 당시의 상황들을 다뤄야 한다고 말이다.” – 존 쉐인펠드
<존 레논 컨피덴셜>은 뮤지션 존 레논보다는 존 레논과 미국 정부간에 벌어졌던 투쟁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1966년 미국에서의 활동 중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존 레논이 사회적 논쟁의 중심에 서기 시작한 순간부터 1976년 영주권을 획득하여 합법적인 체류를 인정받기까지의 기간 동안 주류 사회에 저항했던 여정을 담고 있다. 존 레논의 음악들은 여전히 명곡으로 남아 있지만 비틀즈 해체 이후 존 레논이 어떤 일들을 했는지, 그가 왜 그런 활동들을 펼쳤는지 존 레논 일생의 진심이 담겼던 사회활동들이 사람들에게 점점 잊혀져 가고 있는 것을 두 감독은 안타까워 했다.
실제로 비틀즈 이후 존 레논의 행보는 뮤지션보다는 사회 참여적 성향이 강한 예술가적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존 레논 컨피덴셜>은 1970년대 급진 좌파들과 교류하며 반전 평화 운동을 펼쳐왔던 존 레논을 위협세력으로 간주하고 그를 추방하려 했던 미국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존 레논이 자신의 삶 속에서 오노 요코와 함께 신념을 지켜내기 위해 겪어왔던 일들, 이를 위해 희생했던 모습들을 통해 평화를 지키고자 노력했던 존 레논의 진심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왜 다시 존 레논(John Lennon)인가?
우리가 그를 다시 기억하려는 이유 그리고 존 레논이 남기고 간 것
<존 레논 컨피덴셜>을 통해 우리는 존 레논의 다양한 모습을 만나게 된다. 세계적 그룹 비틀즈의 리더였고 비틀즈 해체 이후 파격적인 예술활동과 사회참여를 통해 세계 흐름에 동참하려 했던 그의 다양한 모습은 존 레논이라는 인물에 대한 매력을 더하기도 하고 혹은 이제껏 알고있던 그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존 레논을 이해하게 만든다.
<존 레논 컨피덴셜>을 보는 재미는 ‘변화란 위대한 개인 하나에 의해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는 지점에 있다. 이 영화를 통해 우리가 2008년 현재 시점에서 존 레논이라는 인물에 대해 공감하고자 하는 부분은 ‘사회 흐름에 대해 자신의 가치관과 믿음에 기반한 주관적이고 올바른 태도를 가지려는 개인이 사회 변화의 물꼬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은 1960년대 평화운동의 또 다른 상징이었던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문을 통해서도 그대로 확인된다. “내가 지나가는 길에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면, 노래나 말로 누군가의 용기를 북돋을 수 있다면, 누군가에게 옳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고 말해 줄 수 있다면, 나의 삶은 헛되지 않은 것이 될 것입니다. – 마틴 루터 킹 ”.
위대한 뮤지션이기 이전에 피끓는 젊음으로 시대를 살았던 존 레논. 위대하거나 혹은 그렇지 않거나 분명한 것은 존 레논이 자신의 믿음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용기 있는 예술가였다는 점, 그리고 이러한 그의 모습이 2008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자기만의 분명한 시선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는 점이다.
‘Imagine’ & ‘Power to the people’ 사이
‘Love’ & ‘Give peace a chance’ 사이
음악으로 자기 시대를 살았던 뮤지션 존 레논
“나는 음악을 통해 나의 감정을 충실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 존 레논
존 레논은 음악을 통해 삶에 대한 자신의 철학과 믿음을 그대로 표현해내는 뮤지션이었다.
존 레논은 비틀즈 시절, 사랑으로 모든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내용의 여성적 시각에서 사랑을 표현한 노래 ‘From me to you’, 1960년대 초반의 분위기를 완벽하게 표현해내며 전 세계에 비틀즈 열풍을 일으켰던 ‘I want to hold your hand’, 세계적 스타로 사생활이 없었던 비틀즈 멤버들이 자유를 갈망하는 내용을 담은 ‘Can’t buy me love’, 사랑과 평화의 시적 메시지를 담아낸 유쾌한 곡 ‘Yellow Submarine’과 ‘All together Now’ 등 자유와 사랑, 개성이 가득한 노래로 1960년대 젊은이들의 감성을 대변했다.
존 레논은 비틀즈 해체 이후에도 사랑과 평화에의 소망을 서정적 리듬으로 담아낸 대표곡 ‘Imagine’, ‘Love’ 등 감성적인 곡들을 꾸준히 만들어 냈다. 하지만 자신의 신념을 좀 더 확고하게 표현하던 이 시기의 존 레논은 평화를 기원하는 “War is over, if you want it”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캠페인성 크리스마스 음악 ‘Happy Christmas’, 극좌파 사람들을 알게 되면서 좌파 잡지 인터뷰 후 만든 권력에 대항하는 민중의 노래 ‘Power to the people’, 베드인 시위를 펼치며 만든 곡 ‘Give peace a chance’ 등 그가 오래도록 지지해온 ‘평화’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드러내는 곡들을 선보이며 비틀즈 시절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음악을 통한 시대와의 소통을 시도했다.
<존 레논 컨피덴셜>은 영화 전반을 타고 흐르는 40곡의 음악 중 37곡이 비틀즈 이후 만들어진 음악이다. 포스트 비틀즈 시절 존 레논이 음악을 통해 어떻게 세계와 교감하려 했는지의 과정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며 음악을 매개로 자신의 가장 깊고 내밀한 정서와 믿음을 세상에 드러냈던 존 레논을 만나게 된다.
당신이 알고 있는 존 레논은 누구인가?
가수인가, 시인인가, 혁명가인가?
문화혁명의 상징이‘되어버린’아티스트, 존 레논
“나는 사람들에게 권력이 자신들에게 있음을 알리고자 한다.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를 위해 싸울 능력이 있다” - 존 레논
영국의 작은 항구도시 리버풀에서 ‘비틀즈’라는 세기의 밴드를 만들어낸 존 레논은 ‘I want to hold your hand’, ‘She Loves You’, ‘Help’, ‘ Let It Be’ 등 수많은 히트곡들을 선보이며 세계적인 명성을 떨친 뮤지션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뮤지션으로서의 성공적인 행보에도 불구하고 존 레논은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까지 그의 인생에서 가장 불안정하고 위험했던 시기를 보냈다. 1968년 비틀즈의 부띠끄는 큰 손실을 냈고, 비틀즈의 내분은 점점 심해져 결국 1970년 팀을 공식 해체하기에 이른다. 존 레논은 더 이상 비틀즈가 아닌 ‘존 레논’이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인 홀로서기에 나선다. 하지만 비틀즈 해체로 인해 계속된 폴 매카트니와의 신경전, 반전 운동 활동으로 겪게 된 미국 정부와의 마찰 등 존 레논은 진정으로 자유로운 시간들을 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중요한 점은 존 레논이 비틀즈의 성공한 뮤지션으로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는 안락한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고 사회참여의 길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그는 오노 요코와의 결혼 이후 신혼여행 대신 1969년 4월부터 12월까지 끊임없이 ‘베드인(Bed- in) 시위’를 펼쳤으며, 크리스마스에 맞춰 ‘War is over, If you want it’이라는 음반 발매와 동시에 동명의 광고판 형식 포스터를 전세계 주요 도시에 내걸며 전 세계적인 평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이외에도 특히 존 레논은 68혁명을 전후로 세계 젊은이들을 들끓게 했던 반전 운동 기류 속에 베트남전 반전 시위와 흑인인권 운동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며 ‘평화’의 가치를 역설하는 대담한 행보를 선보이며 1960, 1970년대 문화혁명의 상징적 존재가 된다.
<존 레논 컨피덴셜>은 비틀즈 시절, 그리고 비틀즈 해체 후 대중의 편에서 권력에 정면 대항했던 존 레논의 긴박한 이야기부터 1980년 암살되던 순간까지의 생생한 기록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던 뮤지션 존 레논 그 이상의 진실을 보여준다.
그녀는 ‘마녀’인가, ‘여신’인가?
오노 요코(Yoko Ono) 이전의 존 레논, 이후의 존 레논
“오노 요코는 나와 예술적 온도가 딱 맞는 사람이다” - 존 레논
다재 다능한 전위 예술가이자 모험가로 명성을 날리던 오노 요코와 비틀즈 멤버였던 존 레논의 만남은 세계적 스캔들이 된다. 오노 요코를 만나기 이전, 집에 있는 시간보다 비틀즈 멤버나 스튜디오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일 정도로 음악과 자신이 만든 밴드 비틀즈가 인생의 모든 것이었던 존 레논은 당당하며 거칠기는 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음악을 통해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뮤지션이었다. 1966년 존 레논은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을 반대한다’라는 돌발발언을 하기도 했지만, 68혁명 때 인도로 명상 여행을 떠나는 등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 전적으로 개입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1969년 존 레논은 전위예술가 오노 요코를 만난 이후 큰 변화를 보이게 된다. 존 레논은 이전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게 사회 운동의 일원으로 실험적인 음악들을 많이 발표하며, 예술적 성향보다는 정치적 성향을 지닌 예술가적 기질 혹은 사회운동가로서의 면모를 드러낸다. (비틀즈의 모든 멤버가 그렇듯이) 본래 시골 노동자 계급 출신이기도 한 존 레논에게 오노 요코와의 만남은 그의 사회 참여 정신을 드러내게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오노 요코는 ‘반전, 평화, 자유’의 사상아래 아방가르드한 예술세계로 존 레논을 인도하며 신혼여행 대신 ‘베드인(Bed-in) 평화 시위’를 펼치고 ‘플라스틱 오노 밴드’를 결성해 반전 사상을 담은 곡들을 발표하는 등 존 레논과 함께 사회 참여적 성향을 확고하게 드러내는 활발한 활동을 펼친다. 이러한 두 사람의 행보를 바라보며 세간의 언론은 오노 요코에 대해 존 레논을 품에 안은 ‘마녀’ 혹은 ‘여신’이라는 양립의 평가를 내리기도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오노 요코가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전통의 형식을 뒤엎은 독립적 예술가로 인정받기에 모자람이 없다는 것과 존 레논의 예술 세계에 새로운 장을 열어준 계기가 되어 주었다는 점이다.
1960년대와 1970년대,
베트남전과 68혁명 그리고 ‘비틀즈(The Beatles)’로 기억되는 시대
1960년대와 1970년대 세계는 뜨거운 격동의 시기를 보낸다. 베트남전이라는 극한 시대 상황에 맞물려 기존 가치의 거부, 평화에 대한 열망, 인종 갈등의 재점화 등 기성세대와 신세대간 가치관의 충돌은 이 시대에 거친 열기를 더했다.
이 시기 세계 젊은이들이 염원한 것은 일상의 삶에서 자아실현의 출구를 찾는 것이었다. 이들의 삶의 질적 가치 추구는 ‘68혁명’이라는 이름 아래 전세계적 물결을 타고 기성 세대 가치관의 허구성과 위선에 대한 분노로 표출된다. 이런 맥락으로 이해한다면 1960, 1970년대는 문화혁명의 시대라 볼 수 있다. 단순히 정치 체제의 개편과 변혁을 요구하기 위한 투쟁이 아닌 자유롭고 새로운 삶의 양식과 자기 정체성을 찾으려는 젊은이들의 문화운동의 시대였던 것이다.
이러한 세계적 기류 속에 외쳐졌던 ‘국경을 타도하라’라는 1960, 1970년대 저항운동의 슬로건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길을 연다. 존 레논, 폴 매카트니, 링고 스타, 조지 해리슨으로 구성된 영국 리버풀 출신 그룹 ‘비틀즈’가 세계적 그룹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이러한 자유주의의 세계화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1960년대, 거칠고 도전적이며 다듬어지지 않은 락큰롤에 염증을 느끼던 대중은 특유의 유머와 당돌한 자의식, 클래식과 전통음악을 넘나드는 다양한 음악성으로 무장한 젊은 그룹 비틀즈의 ‘자유로움’에 열광하며 비틀즈를 20세기 최고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잡게 한다.
베트남전에 대한 세계적 반전 운동, 68혁명이라는 문화혁명의 물결 그리고 ‘비틀즈’라는 상징적 그룹으로 대변되는 1960, 1970년대. <존 레논 컨피덴셜>은 이 시대 사회변혁의 또 하나의 상징이 된 인물 존 레논의 실제 이야기를 통해 보다 입체적으로 그와 그 시대를 들여다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