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순(문예봉 분)은 여염집의 부인으로 허영이 심하고, 가정을 돌보지 않는다. 참다못한 남편(이금룡 분)은 애순을 내쫓고, 애순은 남편과 딸 정희(유선옥)를 버려둔 채 정부와 함께 호텔에서 지낸다. 애순은 어느 날 정부가 돈 많은 유지가 아니라 가난한 하숙생이자 범죄자임을 알게 되고, 강도를 계획하는 정부를 경찰에 신고하고 화려한 무용수를 쫓아 다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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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작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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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대체 어딜 가는 게요?” “데파트에 가요.” “뭔 옷을 또 산다는 게요?” 일명 ‘죽음의 자장가’라고도 불리는 영화 <미몽>은, 오늘날의 평범한 부부의 가시 돋친 말싸움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은 대화로 시작한다. 그러려면 차라리 집을 나가라는 남편이나 자기도 데려가라 떼를 쓰는 어린 딸은 아랑곳않고 비싼 옷 쇼핑에 여념이 없는 이 여자, 애순. 20년 뒤에 등장했던 <자유부인>과 비교해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자유분방함을 자랑하는 그는, 사랑했던 정부가 실은 가난한 범죄자임을 알게 되자 망설임없이 경찰에 신고하는 결단력까지 겸비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현대 무용가를 향해 열렬히 구애하던 그이지만, 자신의 욕망이 사랑하던 딸의 목숨까지 위태롭게 만들게 되자 후회어린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파격적인 애순의 캐릭터 못지않게 눈길을 끄는 것은 할리우드 고전영화의 만듦새를 의식하지 않은 영화의 스타일. 대부분의 장면에서 180도 법칙은 지켜지지 않고, 비슷한 앵글과 사이즈의 숏이 반복된다. 사운드의 유사성을 염두하여 시퀀스를 연결시키거나, 교차편집을 통해 인물의 상황을 극대화하는 등 편집기사 출신 감독의 세심한 손길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나는 조롱 속에 든 새가 아니니까요”라는 애순의 대사가 이어지는 동안 실제 새장을 보여주는 장면에선 몽타주 이론의 흔적도 엿보인다.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