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적인 선거로 이룩한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정권. 1970년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당당히 칠레 대통령에 당선된 살바도르 아옌데는 대기업의 국유화와 농업 개혁 등을 단행한다. 그러나 사회주의 정권의 수립을 바라지 않는 미국과 급진 개혁을 두려워한 칠레의 보수 세력은 아옌데 정부를 붕괴시키기 위하여 애쓴다.
결국 아우구스트 피노체트 장군을 중심으로 하는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킨다. 그리고 1973년 9월 11일(미국 뉴욕 무역 센터가 붕괴된 2001년 9월 11일과 같은 날), 군부의 전투기가 대통령궁을 폭격하고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은 투항 권고를 거부한 채 대통령궁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파트리시오 구즈만은 [살바도르 아옌데]를 통해 칠레 민중의 옛 영웅 아옌데의 일생을 추적한다. 그는 “바로 그 시기에 살바도르 아옌데가 더 좋은, 더 자유로운 유토피아를 나의 조국에 실현시키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내 인생을 결정지은 인물이고, 나는 그 시절의 기억을 결코 잊을 수 없다.” 라고 고백한다.
more
결국 아우구스트 피노체트 장군을 중심으로 하는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킨다. 그리고 1973년 9월 11일(미국 뉴욕 무역 센터가 붕괴된 2001년 9월 11일과 같은 날), 군부의 전투기가 대통령궁을 폭격하고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은 투항 권고를 거부한 채 대통령궁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파트리시오 구즈만은 [살바도르 아옌데]를 통해 칠레 민중의 옛 영웅 아옌데의 일생을 추적한다. 그는 “바로 그 시기에 살바도르 아옌데가 더 좋은, 더 자유로운 유토피아를 나의 조국에 실현시키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내 인생을 결정지은 인물이고, 나는 그 시절의 기억을 결코 잊을 수 없다.” 라고 고백한다.
포토 (6)
네티즌 리뷰 (3명 참여)
리뷰 남기기-
home0002008-02-19 18:09:186칠레 역사에서 느껴지는 역사적 사건의 감동이란?신고
-
dd402008-02-19 17:59:386칠레 현대사가 궁금하다면 이 영화를 추천하오.신고
-
gusarud2006-02-10 20:14:36105월, 그리고 살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more 신고
=======================
1. 들어가며
"이번이 제가 여러분에게 말하는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곧 마가야네스 라디오도 침묵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용기를 주고자 했던 나의 목소리도 닿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계속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항상 여러분과 함께 할 것입니다. 적어도 나에 대한 기억은 이 나라에 온 몸을 바쳤던 사람.
내가 이제 박해받게 될 모든 사람들을 향해 말하는 것은, 여러분들에게 내가 물러서지 않을 것임을 이야기하기 위한 것입니다. 나는 민중의 충실한 마음에 대해 내 생명으로 보답할 것입니다. 나는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우리나라의 운명과 그 운명에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이 승리를 거둘 것이고, 곧 가로수 길들이 다시 개방되어 시민들이 걸어 다니게 될 것이고, 그리하여 보다 나은 사회가 건설될 것입니다.
칠레 만세! 민중 만세! 노동자 만세! 이것이 나의 마지막 말입니다. 나의 희생을 극복해내리라 믿습니다. 머지않아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다 나은 사회를 향해 위대한 길을 열 것이라고 여러분과 함께 믿습니다. 그들은 힘으로 우리를, 우리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무력이나 범죄행위로는 사회변혁 행위를 멈추게 할 수는 없습니다. 역사는 우리의 것이며, 인민이 이루어내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자유롭게 걷고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할 역사의 큰 길을 인민의 손으로 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1973년 9월 11일 칠레의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가 마지막으로 남긴 대국민 연설이다. 라디오를 통해 울리는 이 남자의 목소리에 칠레의 민중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지키지 못하는 현실에 분노와 좌절을 느껴야 했다. 이 마지막 연설 후, 살바도르 아옌데는 자신의 보좌관과 비서 등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대통령 집무실인 모네다궁 떠날 것을 마지막으로 명령한다. 그리고 자신은 대통령으로서 국민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그곳을 떠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카스트로가 선물한 한 자루 권총을 들고 살바도르 아옌데는 마지막까지 쿠데타 세력과 싸우겠노라고 말한 것이다. 얼마 되지 않아서 군부 쿠데타 세력은 모네다궁에 폭격을 퍼부었다. 동시에 무장한 쿠데타 세력이 모네다궁에 진입하기 시작했고 잠시 후, 몇 발의 총성과 함께 칠레의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는 최후를 맞는다. 칠레의 국민들은 그 오욕의 역사와 함께 이 날을, 그들의 지도자 살바도르 아옌데를, 3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뚜렷하게 기억한다고 한다. 그날 이후, 쿠데타에 성공한 피노체트는 일주일 동안 3만여 명의 국민들을 학살한다.
2. 다큐멘터리 살바도르 아옌데
이것은 기록된 역사이기도 하며 한 편의 다큐멘터리의 내용이기도 하다. 「칠레 전투」를 만들었던 칠레의 다큐멘터리 감독 파트리시오 구즈만은 과거 살바도르 아옌데가 선거에 임할 때부터 촬영했던 화면들을 재구성하고, 현재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인터뷰해서 「살바도르 아옌데」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그는 잊혀진 영웅 살바도르 아옌데가 자신에게 미친 지대한 영향을 고백하듯, 그에 대한 존경과 헌사로 영화를 채워나간다. 그는 “바로 그 시기에 살바도르 아옌데가 더 좋은, 더 자유로운 유토피아를 나의 조국에 실현시키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내 인생을 결정지은 인물이고, 나는 그 시절의 기억을 결코 잊을 수 없다”고 고백한다.
영화는 70년, 살바도르 아옌데가 대통령 선거에 당선되어서 최초의 선거에 의한 합법적인 사회주의 정권을 탄생시키는 과정과 그 승리의 의미를 당시에 촬영된 화면과 선거에 참여했던 (살아있는!) 사람들과의 현재 인터뷰를 섞어서 친절히 설명한다. 그리고 그가 대통령이 되어서 대기업을 국유화하고 농업을 개혁하는 등 사회주의적 정책을 추진 할 때, 그를 환영했던 민중들의 모습을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화면에 담는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은 자국의 기득권세력의 저항과, 자본가의 파업, 그리고 사회주의 정권을 묵도할 수 없는 미국의 지원을 업은 군부에 의해서 혼란에 빠지고 만다. 모든 것과 고립된 대통령은 국민들과 직접 만날 수밖에 없었고 칠레의 민중들은 경제적 고난 속에서도 여전히 그를 지지한다.
3. 살바도르 아옌데가 남긴 것
역사가 증명하듯 살바도르 아옌데는 실패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실패의 이유에 대해서 감독은 기득권세력의 강한 저항과 미국의 영향이 큰 요인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당시 미국 대사를 인터뷰한 내용은 미국의 실체가 무엇인지 몸서리치게 느끼게 해준다. 미국은 합법적 사회주의 정권인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을 전복하기 위해서 피노체트라는 인물을 내세워 군을 이용, 쿠데타를 시도한다. 피노체트를 비롯한 군부 쿠데타 세력은 미국의 계획과 자금, 그리고 작전 지시까지 받아서 자국의 대통령을 제거하려 하는 것이다.
쿠데타는 이미 예고되어있었다. 영화는 쿠데타의 기운이 감돌던 당시 자신의 죽음을 촬영했던 한 아르헨티나 출신의 촬영감독의 이야기로 그 엄혹했던 시대 상황을 보여준다. (그는 아무 이유 없이 도시에 진입한 군인을 촬영하다 총격을 당해 죽는다.)
살바도르 아옌데는 마지막 날, 쿠데타의 연루자를 알아내기 위해서 전화를 걸지만, 결국 모든 사람이 연루되었음을 알게 된다. 그는 그렇게 외롭게 죽어갔지만, 사실은 외롭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그를 지키고자 했던 노동자, 민중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칠레의 노동자, 민중들은 인민연합을 중심으로 자본가의 파업과 미국의 고립정책으로 인해 어려운 경제 상황을 겪으면서도 살바도르 아옌데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고 그들의 대통령을 지키고자 봉기하기도 한다.
피노체트, 군부, 자본가, 그리고 미국은 이들의 희망을 거대한 폭력으로 좌절시켰다. 모두가 잘사는 사회주의적 유토피아를 코민테른의 간섭을 받지 않고 민주주의적 제도 속에서 실현하고자 했던 칠레의 이 실험은 결국 시도 되지도 못했다.
그렇게 살바도르 아옌데는 잊혀지고 있지만 감독은 여전히 자신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그를 기억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기억의 의미가 바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일 것이다. 30년이 지났지만 당시 학살의 주범인 피노체트는 영국의 대처를 비롯한 강대국 명망가들의 구명 운동에 힘입어 여전히 잘(!) 살고 있다. 일주일동안 삼만의 국민을 학살하고 십만을 고문하여 불구로 만들었으며 백만을 국외로 추방했던 그는 여전히 친구들의 비호를 받으며 그 죄 값을 치루지 않을 뿐 아니라 진실도 밝히고 있지 않다. 또한 사실상 이 참극을 지휘했던 미국 역시 여전히 세계의 경찰국가임을 자부하며 합법적인 침략행위를 일삼고 있다.
4. 아, 광주...
우리가 이 영화를 통해서 보는 것은 안타깝게도 우리의 지난날이다. 칠레의 73년 9월은 불과 25년 전의 그 날, 광주의 5월과 비슷한 면이 많다. 군부에 의한 쿠데타, 그리고 그 후의 양민 학살, 미국의 지원 등 73년의 칠레와 80년의 광주는 닮은 꼴이다.
5월이 되면 설명하기 힘든 감정들이 뒤 섞여 한 달을 보내야 했었다. 분명, ‘보내야 했던’적이 있었다. 이 과거형은 이미 역사의 한 기록으로만 5월을 기억하는 우리의 모습에 대한 자조와 안타까움을 포함한다.
언제부터 5월이 역사의 기록으로만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것이 되었나, 누가 5월을 종결 시켰는가? 이 물음 앞에 우리는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다. 그것은 여전히 그날의 의미가 한국의 민주주의에 주었던 영향이, 그리고 그날의 상처들 속에 살고 있는 이들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80년 광주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이 얼마인지 아직도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그날 이후 행방을 찾을 수 없는 사람들도 수백에 이른다고 한다. 당시의 증언들은 무참한 살육과 암매장을 말하지만 우리는 아직 밝혀내지 못한 미완의 역사로 80년 5월의 광주를 잊어가고 있는 것이다.
80년 광주의 5월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기에, 화석화된 역사가 아니다. 5월의 의미는 여전히 우리의 민주주의 역사에 살아 움직이고 있다. 또한, 그 양민 학살의 주범들을 여전히 진실을 얘기 하지 않고 있다.
살바도르 아옌데는 칠레의 민중들에게 어떤 의미이며, 그리고 광주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각자 그 의미는 다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 안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날 그들의 희생과 투쟁이 오늘날, 우리의 안락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 안락에 취해 범하지 말아야할 선을 넘는 것은 무지이기 이전에 인간에 대한 모독이 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 이다.
5. 제발...
얼마전 TV 드라마 제5공화국의 인기와 그로 인한(사실 이유가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유란 제 정신의 사람들이 대는 것이다.) 전 대통령의 인기, 전사모라는 팬클럽을 결성할 정도라고 하는데, 우리의 천박한 무지가 그날 마지막까지 도청을 사수하다 죽어간 이들에게, 아니 적어도 그날 집을 나간 딸을 25년 동안 기다리는 어머니의 가슴에 칼질을 하고 있는 듯하다.
배우와 스탭
감독
출연
-
(살바도르 아옌데 역)
-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역)
-
(피델 카스트로 역)
-
(헨리 키신저 역)
-
(리차드 닉슨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