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정보
- 직업감독
- 생년월일1939-08-02
- 성별남
소개
가장 개성적인 공포영화감독 중 한사람으로 손꼽히는 웨스 크레이븐은 <나이트메어 Night-mare on Elm Street>(1984)의 살인마 프레디 크루거를 창조한 사람이다. 그의 영화는 한번도 공포영화의 테두리를 벗어난 적이 없다. 그러면서도 그는 기성세대의 억압, 전쟁, 흑백갈등, 빈부격차, 의사소통의 부재, 독재, 종교, 대중매체에 대한 중독 등 현실적 문제에 관심을 표명했으며 <뉴 나이트메어 Wes Craven’s New Nightmare>(1994), <스크림 Scream> (1996) 등에서는 공포영화라는 장르에 대한 자기성찰에 이르렀다. 덧붙여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현란하게 넘나드는 놀라운 상상력과 숙련된 편집은 그가 이 분야의 장인을 넘어서 독창적 작가로 평가받게 만들었다.
공장노동자인 아버지와 비서일을 하는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그는 독실한 침례교 집안에서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일리노이주 휘튼칼리지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그는 학교에서 문학잡지 편집장으로 일하기도 했으며 존스홉킨스대학에서 인문학부 석사학위를 받은 뒤 대학강의를 했다. 그가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뉴욕의 클락슨대학에서 강의할 때였다. 우연히 16mm카메라 한대를 산 게 계기가 되어 1969년 두 아이와 아내를 가진 30살의 크레이븐은 대학강의를 그만두고 영화사 직원으로 취직했다. 몇주 뒤 가정생활은 파경에 이르렀지만 그는 낮에는 영화사에서 편집일을 하고 밤에는 택시운전기사를 하며 영화를 만들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1972년 후일 <13일의 금요일 Friday the 13th>(1980)의 감독으로 유명해진 숀 커닝엄이 그를 찾았다. 진짜 무서운 영화를 한편 만들자는 그의 제안에 따라 만든 게 70년대 공포영화의 대표작 중 한편인 <왼편 마지막 집 Last House on the Left>(1972). 약 9만달러의 제작비로 만든 이 영화는 드라이브인극장의 인기프로가 돼 약 2천만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영화평론가 로빈 우드는 이 영화를 70년대 나온 가장 격렬한 공포영화 네편 중 하나로 꼽았다. 두번째 작품인 <공포의 휴가길 The Hills Have Eyes>(1977) 역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캠핑을 가던 일가족이 사막에서 식인풍습을 가진 기형의 인간들을 만나 끔찍한 경험을 한다는 내용의 영화. 크레이븐의 이름을 유명하게 만든 <나이트메어>는 제작사인 뉴라인시네마를 메이저급 영화사로 만든 기념비적 작품이다. 뉴라인은 <나이트메어> 시리즈 5편으로 총 1억710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하지만 속편이 양산되는 동안 크레이븐은 초연했다. <공포의 휴가길2 The Hills Have Eyes2>(1985), <악령의 관 The Serpent and the Rainbow>(1988), <영혼의 목걸이 Shocker>(1990) 등을 만들며 그는 <나이트메어>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가 <뉴 나이트메어>(1994)를 연출한 것은 자신이 창조한 것을 스스로 무덤에 보내려는 의도였던 걸로 보인다. 감독, 배우, 제작자가 모두 실명으로 출연하는 이 영화에서 감독은 창작물의 포로가 된다.
<뉴 나이트메어>를 빼곤 90년대 들어 크게 주목받지 못하던 크레이븐의 경력은 <스크림>을 통해 다시 꽃피었다. 케빈 윌리엄슨의 시나리오를 영화화한 <스크림>은 장르의 관습을 재치있게 뒤집음으로써 새로운 공포영화의 시대를 열었다. 70년대 공포영화를 즐기던 세대가 부모가 된 90년대에도 10대들은 난도질로 피가 얼룩진 영화를 찾았던 것이다. <스크림2 Scream2>(1998) 역시 장르에 대한 성찰적 내용으로 전작의 특성을 이어갔고 전편에 못지 않는 성공을 거두었다. 대부분 조로하는 공포영화 장르에서 그는 독보적인 존재가 된 셈이다. <b>[씨네21 영화감독사전, 1999]</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