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정보
- 직업감독
- 생년월일1951-07-19
- 성별남
소개
아벨 페라라는 뉴욕의 독립영화감독들에게 상징적인 대부 같은 존재다. 페라라는 80년대 이후 굉장한 힘과 개성을 지닌 작품으로 꽤 성공한 이후에도 뉴욕에 근거지를 두고 자기식의 영화를 찍는 괴짜 감독인데, 현대 미국영화계에서 그만한 작가적 고집을 지키는 감독도 드물 것이다. <킹, 뉴욕 King of New York>(1990)이 비평과 흥행 모두 성공한 90년 이후에도 페라라는 마음만 먹으면 할리우드영화를 연출할 수 있었지만 개의치 않고 불과 20여일간 뺑소니 촬영식으로 후딱 소규모의 저예산 독립영화를 찍었는데, 그렇게 완성된 <악질 형사 Bad Lieutenant>(1992)는 페라라의 대표작이 됐다. 페라라의 행보는 늘 그랬다. 그의 영화는 자기파괴적이고 퇴폐적이어서 때로는 제어하기 힘든 함정에 빠진 듯하지만 페라라만의 독자적인 색깔은 늘 빛이 난다.
52년 뉴욕에서 아일랜드계와 이탈리아계 부모의 혈통을 받고 태어난 페라라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8mm영화를 찍었고 졸업 후에 고교 동창인 니콜라스 존과 짝을 이뤄 영화사 나바론 필름을 차렸다. 호주머니 돈을 털어 니콜라스가 각본을 쓴 저예산 공포영화 <송곳 살인자 The Driller Killer>(1979)란 영화를 연출한 후, 뉴욕의 한 여성이 하룻밤에 두번씩이나 강간을 당한 뒤 남자들을 처단하는 살인자로 변하는 내용을 담은 <복수의 립스틱 Angel of Vengeance>(1981), 뉴욕의 연쇄살인범을 다룬 <피어 시티 Fear City>(1984) 등의 영화로 B급영화의 수준을 넘지 못했으나 잔인하고 폭력적이며 소름끼치게 냉정한 페라라의 스타일을 굳혔다. 페라라는 그후 텔레비전 영화를 연출하면서 역량있는 액션 장르의 스타일리스트로 이름을 쌓았다. 그리고는 다시 뉴욕으로 돌아와 갱들이 활개치는 뉴욕 뒷골목을 배경으로 <로미오와 줄리엣>을 폭력적으로 번안한 <차이나 걸 China Girl>(1987)을 발표했다. 이때까지가 사디스틱한 기질의 폭력영화감독이었다면 엘모어 레오나드의 소설을 영화화한 <캣 체이서 Cat Chaser>(1989)와 <킹, 뉴욕>, <악질 형사> 등의 영화는 타블로이드 신문이 전해주는 세상의 진실과 열기와 활력을 영화로 옮겨내는 페라라의 재능을 확인시켜 줬다.
하비 카이텔이 연기하는 <악질 형사>의 주인공 형사는 한 수녀의 강간 사건을 수사하면서 마음속에 묻어뒀던 믿음과 부활의 문제와 대면한다. 강력계 형사인 그는 제멋대로 폭력을 휘두르고 한순간도 마약없인 살지 못하는 쓰레기라는 점에서 범죄자들과 다를 게 없다. 무면허운전을 하는 십대 여자들을 붙잡아놓고 노련한 말솜씨로 위협한 후에 치마를 걷게 하고 신음소리를 내게 하면서 차 문 앞에서 자위를 하는 파렴치한인데, 어떤 형사도 이만큼 엽기적인 묘사를 담은 적이 없다. 그러나 페라라는 이 주인공 형사를 악마로만 몰고 가지는 않았다. 모든 게 철저하게 타락한 도시에서 형사가 겪는 실존적인 고민, 마틴 스콜세지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페라라는 자기 내부에서 무너져가는 한 인간을 관찰하는데 주인공이 눈물을 흘리며 두 흑인 범죄자를 풀어주고 대로변 차 안에서 총에 맞아 죽는 마지막 장면은 처절하며 털끝만큼도 감상적이지 않다. 이 영화는 샘 페킨파 감독의 <가르시아>와 같은 작품처럼 하드 보일드 영화 전통의 적자로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페라라의 영화경력은 기복이 심한 편이다. <스네이크 아이 Snake Eye>(1993)는 영화제작 과정을 기록영화 스타일을 섞어 묘사한 야심작이었으나 돈 시겔의 고전 공상과학 영화인 <신체 강탈자의 침입>을 리메이크한 <보디 에어리언 Body Snatchers>(1994)은 저예산 영화체질인 페라라에게 규모있는 SF 주류영화의 상상력은 어울리지 않는 것이 아닌가라는 회의가 들게 만든다. 페라라는 약간의 자아도취적인 도착과 허무주의가 대도시의 파괴적이고 세기말적인 삶을 포착할 때 잘 드러난다. <퓨너럴 The Funeral>(1996)은 갱영화의 관습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페라라의 자학적인 비관주의가 빛나는 작품이었지만 <블랙 아웃 Black Out>(1998)은 뉴욕 패션계의 퇴폐적인 생활 묘사에 영화가 묻혀버린 듯한 과잉으로 가득 찬 작품이었다. 수준이 고른 편은 아니지만 여하튼 페라라의 영화는 스스로의 파멸을 잔인하게 응시하고 즐기는 세기말의 데카당스에 기운다. 페라라는 극히 개인적인 시선으로 전체가 잡히지 않는 미학을 기꺼이 추구하고 있다. <b>[씨네21 영화감독사전]</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