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정보
- 직업감독
- 생년월일1873-04-24
- 사망1938-07-17
소개
대표작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제누인>
비디오 출시작 없음
1차대전 이후 독일은 전쟁의 패배에 따른 가치관 붕괴, 정부에 대한 불신, 사회혼란,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하게 됐다. 이런 전반적인 사회적 불안요인들은 당시 문화계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어 인간의 절박한 공포, 불안, 증오 등이 중요한 화두로 받아들여졌다. 이렇게 해서 독일 표현주의가 탄생되었고, 대부분 영화학자들은 1919년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Das Kabinett des Dr. Caligari>을 본격적인 출발점으로 꼽는데, 이 영화의 감독이 바로 로베르트 비네다.
1881년 독일 태생인 로베르트 비네는, 베를린에 위치한 ‘레싱 극장’에서 배우, 극작가, 연출가로 처음엔 연극분야에서 활동했다.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은 원래 같은 독일 표현주의 감독 프리츠 랑이 맡을 계획이었으나, 프리츠 랑이 <거미 Die Spinne> 연작준비로 바빠 제작자인 에리히 포머가 로베르트 비네에게 이 작품을 맡겼다. 1830년 몽유병 환자 케사르를 관 속에 넣어 다니는 칼리가리 박사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마지막 장면을 칼리가리 박사가 진짜 박사일지도, 정신병자일 수도 있다는 ‘열린’ 구조로 끝맺음으로써 다양한 해석을 낳게 했다.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은 음울한 분위기와 극단적인 연기 그리고 강한 명암의 교차로 당시 독일의 사회상을 예견한 걸작이다. 이 영화가 시도한 실험적인 영화적 장치들, 대담한 화면구도는 그 당시로서는 매우 획기적인 ‘사건’이었으며, 로베르트 비네의 실험적인 영화 기법들은 후에 등장할 독일 표현주의 영화작가 <메트로폴리스>의 프리츠 랑, <노스페라투>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무르나우 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고, 멀리는 프랑스 전위영화에도 영향을 주었다. 또한 <칼리가리…>는 표현주의영화에 대한 인식과 이론적 작업을 활발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로베르트 비네는 이후 표현주의적 색채의 <제누인 Genuine>을 만들었으나, <칼리가리…> 같은 반향은 일으키지 못했다.
로베르트 비네는 독일에 파시즘의 전조가 넘쳐나는 1924년부터 1926년까지 오스트리아로 넘어가 <Orlacs Hande>와 <Der Rosen-kavalier>를 연출했다. 그러나 다시 독일로 돌아온 로베르트 비네는 당국의 감시를 피해 가벼운 코미디물을 만든다. 나치가 극성을 부리던 30년대 초반 비네는 다시 한번 독일을 떠난다. 비네는 배우들에 대한 독특한 교육과 실험정신으로 새로운 시도를 했으나 독일에서만큼 좋은 평가는 얻지 못했다. 로베르트 비네는 1938년 7월17일 유작 <Ultimatum>을 남기고 타향인 프랑스에서 숨을 거뒀다.
<b>[씨네21 영화감독사전]</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