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정보
- 직업감독
- 생년월일1954-12-15
- 성별남
소개
영국 감독 알렉스 콕스의 첫 장편영화 <리포맨 Repo Man> (1984)은 이상한 제목처럼 내용도 괴상했다. 한 남자가 뉴멕시코로 차를 몰고 간다. 그 차를 수상하게 여긴 경찰이 차를 세운다. 경찰이 차의 트렁크를 검사하는 순간 갑자기 그 안에서 빛이 나오고 경찰은 트렁크로 빨려들어간다. ‘이게 웬 싸구려 공상과학 영화냐’라는 생각이 들 때쯤 화면은 펑크족 분위기의 한 청년에게로 건너뛴다. 그는 막 사장의 잔소리를 비웃고 일하던 슈퍼마켓에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와버린다. 대충 이렇게 시작하는 <리포맨>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음 장면을 예측할 수 없다. 할부금이 밀린 차를 주인에게서 도로 빼앗아오는 직업을 가리키는 말인 ‘리포맨’의 삶을 보여주면서 황무지 같은 LA를 감각적으로 잡아냈다. 흥미로운 것은 알렉스 콕스의 스타일이다. 그는 영화를 비롯한 여러 대중문화의 코드를 끌어들여 싸구려 잡탕의 스타일과 심각한 주제의식을 조화시켰다. 대중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지만 일부 평론가와 관객의 주목을 받은 후 컬트의 운명을 낙점받았다.
영국의 리버풀에서 태어난 콕스는 옥스퍼드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브리스톨대학과 UCLA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그뒤 만 30살 되는 해에 <리포맨>으로 나타난다. 이 영화는 펑크족 분위기의 십대들의 생활을 묘사하는 대목, 리포맨의 생활을 묘사하는 대목, 외계에서 온 에일리언이 나오는 대목 등 세 가닥으로 얽혀 있다. 젊은이들과 리포맨으로 전락한 아웃사이더의 삶을 묘사하면서 콕스는 여기에 여러 장르를 잡탕처럼 쓸어모아 저예산의 판타지영화로 풀어간다. 평론가 폴린 카엘에 따르면 이 영화의 좌충우돌하는 유머와 황량한 현실 묘사는 장 뤽 고다르의 <주말>, 로버트 알드리치의 <키스 미 데들리>, 로버트 저메키스의 <중고차 대소동>을 버무린 것이다.
콕스의 다음 영화는 <시드와 낸시 Sid and Nancy>(1986). 영국의 선구적인 록그룹 섹스 피스톨즈의 베이스 주자 시드 비셔스와 미국인 낸시 스펜겐 사이의 절망적인 사랑을 그렸다. <리포맨>에서는 은근하게 배어 있는 펑크적 감성이 이 영화에서는 도드라진다. 시드가 참가했던 펑크록그룹 ‘섹스 피스톨즈’의 신조는 “문제가 있다. 그리고 그 문제는 바로 너다”라는 것이었다. 시드 비셔스의 실제 삶도 그랬다. 그는 명성뿐만 아니라 돈과 권력을 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말썽꾸러기로 살았다. 기존 사회에 대해 계속 엿먹으라는 심정으로 있으면서. 시드 비셔스는 영웅이 아니었다. 그저 마약을 먹고 비틀거리면서 자기가 조절할 수 없는 상황으로 자신을 끝없이 밀어넣은 망나니였다. 그는 직업도, 교육도, 그리고 어떤 사회적 출세도 거부하는 수천명의 런던 젊은이들의 대변자였다. 인생이 제대로 풀리지 않아도 그저 손가락을 세워 엿먹어라 하곤 그만이었다. 70년대 말 영국과 미국의 하위문화 분위기를 생생하게 재현한 이 영화는 알렉스 콕스의 당당한 작가선언이었다.
그러나 콕스의 다음 작품은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스트레이트 투 헬 Straight to Hell>(1987)은 졸작이었고 야심적인 역사영화 <불사신 워커 Waker>(1988)도 찬밥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러나 <불사신 워커>는 과거와 현재의 미국 대외관계에 대해 복잡다단한 문제를 제기하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이 영화는 실존인물인 워커의 일생에 관한 얘기. 워커는 1855년 58명의 병사를 이끌고 니카라과를 침략해서 1년 후에 이 나라의 대통령 자리에까지 오른 전설적인 인물이다. <불사신 워커>는 이런 워커의 일생을 다루면서 기록영화, 다큐드라마, 전기영화 등을 혼합했다. 그러나 이런 장르의 영화들이 보통 소재의 분위기에 눌려 굳은 스타일로 가는 것과 달리 이 영화는 분방하고 유연하다. 영화 끝 장면에서 워커의 군대가 그레나다의 수도를 불사르고 있을 때는 2차대전 때의 공습사이렌이 퇴각을 알린다. 이런 아수라장에서 미국여권을 제시하는 사람은 헬리콥터에 태워져 구출되는데, 이건 또 베트남전을 상기시킨다.
<불사신 워커> 이후 알렉스 콕스의 행보는 안정감이 없어 보인다. <하이웨이 패트롤맨 Highway Patrolman>(1992), <위너 Winner>(1996), <죽음과 나침반 Death and the Com-pass>(1996), <세 사업가 Three Business-men>(1998) 등의 영화를 찍었고 93년에는 <버둥거림>, 94년에는 <밤의 여왕>이란 영화에 배우로 출연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작품도 주목을 받진 못했다. 그의 등장은 역동적이었으나 비타협적이고 독특한 영화 스타일 때문에 산업 내에서 입지를 마련하는 것이 여의치 않아 보인다. 그러나 콕스는 꾸준히 영화를 찍고 있고 아마도 끝까지 변방의 컬트 감독으로 남을 것이다. <b>[씨네21 영화감독사전]</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