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정보
- 다른 이름Nick Ray
- 직업감독
- 생년월일1911-08-07
- 사망1979-06-16
- 성별남
소개
니콜라스 레이는 50년대의 가장 위대한 할리우드 감독이었다. 그러나 그의 영화는 유럽평단의 환대를 받았으면서도 미국에서는 별로 대접받지 못했다. 누구보다 일찍 레이의 번뜩이는 영화적 영감을 ‘발견’한 프랑수아 트뤼포는 프랑스 영화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의 평론가 시절에 이렇게 말했다. “레이를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다음과 같이 말하겠다. 영화관에 가지 마라, 더이상 영화를 보지 마라. 그런 사람은 영감, 시적 직관, 화면, 아이디어, 좋은 영화의 의미를 결코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이는 한동안 세인의 망각 속에 묻혀 있었다. 61년과 62년에 만든 두편의 대작영화 <왕중왕 King of Kings>(1961)과 <북경의 55일 55 Days at Peking>(1963)이 흥행에 실패하면서 그는 할리우드에서 쫓겨났다. 그것으로 레이의 경력은 거의 끝났다. 11년에 미국 갈스빌에서 태어난 레이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밑에서 건축을 공부했고 연극계와 라디오방송쪽에서 일했다. 45년 엘리아 카잔의 <브룩클린에서 자라는 나무 A Tree Grows in Brooklyn>의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후 레이는 49년 제작자인 존 하우스만을 만나 데뷔작인 <그들은 밤에 산다 They Live by Night>(1949)를 만들었다. 그렇고 그런 갱이 나오는 스릴러영화였지만 레이는 자신의 화면 연출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비극적 운명이 예정돼 있는 도망자 연인을 따뜻하게 관찰한 것도 평생 사회의 소외자들에게 친밀감을 보인 레이의 세계관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이후 레이는 RKO사를 위해 몇편의 장르영화를 더 만들었다. <타고난 악한 Born to Be Bad>(1950) <문을 두드리다 Knock on Any Door>(1950) <나는 해병대 Flying Leathernecks>(1951)는 단단한 장르영화였다. 맹렬한 열정을 지닌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가가 살인자로 몰리는 내용을 담은 <외로운 곳에서 In a Lonely Place>(1950)가 초기의 대표작. 이 영화들을 통해 레이는 낭만적인 비관주의와 희귀한 감정적 공명을 일으키는 촬영으로 자신의 상표를 확립했다. 레이는 늘 장르영화를 만들었으나 장르의 규칙을 깨는 데 대가였다. <하이 눈>과 마찬가지로 당시 미국사회를 뒤흔들던 매카시즘을 비유한 서부영화 <자니 기타 Johnny Guitar> (1954)에서 살롱을 운영하는 여주인공인 비엔나는 마을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몰리고 옛 애인인 자니 기타의 도움을 받아 마을사람들과 외롭게 맞서 싸운다. 전통적인 서부영화에서 총잡이는 남성이었 다. 여성은 정의로운 총잡이가 지키려는 문명과 가족과 선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이 영화의 여주인공인 비엔나가 지키려는 것은 문명의 가치가 아니라 그저 자기 자신이다. 비엔나가 목숨 걸고 지킬 만한 사회의 공동선이라는 가치가 이 영화에는 없다. <자니 기타>에서 전통적인 서부영화에서 강조했던 선과 악의 경계는 사라졌다.유럽의 감독들처럼 고상한 사상이나 자기의 인생관을 주장하진 못했지만 레이의 ‘은밀한 형식’은 평론가들에게 해석하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색채와 구도와 카메라 움직임과 등장인물의 몸짓으로 레이는 줄거리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뭔가 심오한 주제를 표현했다. 레이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삶보다 큰 Bigger than Life>(1956)은 생생한 붉은 빛, 불안하게 다가오는 그림자, 세트장식에 대한 흠잡을 데 없는 감각으로 악몽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조용한 도시근교의 학교 교사가 약물을 복용하면서 과대망상 살인자로 변하는 내용을 담은 이 영화에서 주인공인 중년의 교사가 학교에서 일과를 마치고 저녁에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택시회사의 사무실로 출근하는 장면이 있다. 그가 학교 건물에서 걸어나올 때 건물의 배경은 권위있는 회색과 갈색
으로 칠해져 있다. 일반적인 택시회사의 주차장으로 넘어가는 다음 장면에서 화면은 택시들의 번쩍거리는 노란색으로 도배된다. 이 색채의 전이는 이 남자가 사는 삶의 물리적 구속뿐만 아니라 그가 부업에서 느끼는 치욕감, 가족을 부양하느라 부업을 가져야 하는 무력한 남자의 열패감을 보여준다. 레이는 시간과 공간을 이용하는 데도 대가였다. 제임스 딘의 반항적인 이미지로 전설을 만들었던 <이유없는 반항 Rebel without a Cause>(1955)에서 레이는 밤을 효과적인 드라마 배경으로 이용했다. 밤은 부모가 자는 시간이며 혼란과 불안정을 대표하는 시간이다. 낮과 밤을 대비해 보여주는 레이의 연출이 이 영화의 관전포인트. 밤시간에 제임스 딘은 친구들과 함께 절벽 끝까지 차를 몰고 가면서 절벽이 가까워져도 끝까지 차를 멈추지 않는 사람을 승자로 결정하는 ‘치킨 런’이라는 게임을 벌인다. 이렇게 무모하게 청춘을 낭비하면서 보내는 밤의 시간이 앞을 보지 못하고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반항의 시간이라면 낮은 희망의 시간이다. 제임스 딘이 학교에 등교하는 장면. 딘이 차를 몰고 가다가 여주인공인 내털리 우드를 만나는 장면에서 화면은 눈이 부시다. 내털리 우드의 노란색 가디건 이 희망의 감정을 채색해주고 시네마스코프의 넓은 화면이 끊기면 안 된다는 듯 측면으로 느리게 이동하는 카메라 움직임도 이 해방감을 고조시킨다. 레이는 언제나 사회가 칭송하는 모범적인 인간의 테두리를 벗어나 사회의 주변부에서 고독하게 사는 아웃사이더들을 사랑했다. 그의 영화의 주인공들은 늘 사회와 담을 쌓고 파멸로 돌진하는 사람들이었다. 전쟁영화인 <쓰디쓴 승리 Bitter Victory>(1957)는 평범한 영웅 이야기를 무시하고 비겁한 장교와 이상주의자 대장의 갈등에 초점을 맞춰서 전쟁은 헛된 죽음으로 이끄는 것이라는 대장의 생각을 강조했으며 금세기 초 마이애미를 배경으로 새 밀렵꾼들과 맞서 싸우는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습지를 가로지른 바람 Wind across the Everglades>(1958)은 서부영화의 분위기를 끌어오면서도 생태학적이고 인류학적인 주제를 담았다. 레이의 영화는 지적이며 시각적으로 돋보이지만 수준이 고르지 않았다. 그러나 사회가 요구하는 삶을 살지 못하고 다른 삶을 사는 외로운 개인의 내적 고통을 탁월하게 묘사했다. 레이는 갈등과 절망과 고통을 묘사해서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의 대다수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내용은 아니었다. 영화계에서 물러난 레이는 70년대 초 뉴욕주립대에서 영화를 가르치면서 마지막 작품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You Can’t Go Home Again>(1973)를 만들었다. 미국사회의 정신적, 정치적 공황상태를 실험영화 스타일로 연출한 이 영화가 나왔을 때 레이는 이미 전설 속 인물이었다. <b>[씨네21 영화감독사전]에서 발췌</b>